줄거리와 결말 – 하루를 바꾼 선택, 남겨진 기억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은 죽음을 앞둔 한 남자의 상상 속 선택과 감정의 여정을 따라가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은 도쿄에서 우편배달부로 일하며 조용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별한 취미도 없고,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와도 멀어진 상태. 그런 그의 곁에 유일하게 함께해주는 존재는 고양이 ‘캐벨’입니다.
어느 날 갑작스러운 두통으로 병원을 찾은 그는 뇌종양 말기라는 진단을 받습니다. 충격에 빠진 그는 방 안에 혼자 틀어박히고, 그 앞에 자신과 똑같이 생긴 ‘악마’가 나타나 이런 제안을 합니다. “세상에서 어떤 걸 하나 없애면, 하루를 더 살 수 있어.”
그는 처음으로 ‘전화기’를 없애기로 합니다. 익숙한 벨소리, 메시지, 목소리가 사라지자, 사람들과의 연결도 끊겨 갑니다. 두 번째는 ‘영화’. 어머니와의 추억이 담긴 영화관, 옛 연인과 나눴던 감정들이 조용히 지워져갑니다. 다음엔 ‘편지’. 직접 쓴 마음과 기억을 담은 기록들조차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무언가 하나씩 사라질 때마다, 그는 조금씩 자신도 사라지는 기분을 느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고양이 캐벨. 어머니와 함께했던 시간, 가장 가까이에서 자신을 지켜보던 존재. 그는 이 선택 앞에서 멈춰섭니다. 살아남기 위해 소중한 것을 계속 없애는 것이 과연 삶일까. 그제야 그는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합니다.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남은 하루를 포기한 것입니다.
영화는 마지막에 그가 남긴 짧은 말과 함께 마무리됩니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없을 거야.” 죽음을 앞둔 그의 선택은 잔잔하지만 깊은 울림을 남기고, 관객은 ‘진짜 소중한 건 무엇이었을까’를 되묻게 됩니다.
감독과 배우 – 감정을 말없이 끌어올리다
나가이 아키라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삶과 죽음, 기억과 상실이라는 주제를 아주 섬세하게 풀어냅니다. 격렬한 감정 대신, 사라지는 것들의 의미와 그것이 남긴 감정에 집중하며,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삶의 본질을 되묻습니다. 영화는 원작 소설이 가진 철학적 깊이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영상미로 감정을 더해줍니다.
주인공 역을 맡은 사토 타케루는 감정을 크게 표현하지 않으면서도 인물의 슬픔, 회한, 두려움, 애정을 눈빛과 행동으로 충분히 전달해냅니다. 특히 고양이 캐벨과의 장면에서 보여준 절제된 연기는 말보다 더 많은 감정을 전합니다. 관객은 그가 겪는 상실과 회복의 시간을 함께 따라가며, 마음 깊은 곳이 묵직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슬픈 영화가 아니라, 남겨진 것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작품입니다. 누구나 잃기 전엔 몰랐던 감정들, 함께했던 시간의 가치를 조용히 일깨워줍니다.
촬영지 – 아르헨티나와 도쿄, 남겨진 감정의 풍경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의 주요 촬영지는 도쿄와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입니다. 도쿄에서는 주인공의 일상이 펼쳐지는 배달 구역, 낡은 아파트, 어머니와의 추억이 남은 영화관, 편지를 주고받던 우체국 등이 등장합니다. 도시의 평범한 골목과 햇살 가득한 방 안은 감정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고양이 캐벨과 지내는 집은 따뜻한 나무색 가구와 부드러운 조명, 낮은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까지 현실감 있게 연출되었습니다. 이 모든 공간이 실제 가정집에서 촬영돼, 관객이 마치 그 자리에 함께 있는 듯한 몰입감을 느낄 수 있게 해줍니다. 특히 고양이와 마주 앉는 순간순간은 영화의 정서를 가장 잘 전달하는 장면들 중 하나입니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주인공이 생의 마지막을 정리하기 위해 떠나는 여행지로 등장합니다. 파스텔톤의 오래된 골목, 클래식한 서점, 연인과 걸었던 조용한 거리… 그곳은 단지 배경이 아니라, 그가 잃은 감정들을 하나씩 마주하는 장소로 작용합니다. 이국적인 풍경은 관객에게도 마치 기억 속을 거니는 듯한 감정을 선사하며, 영화의 분위기를 완성합니다.
결국 이 영화는 어떤 공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공간에 머물렀던 감정이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사라진 것은 물건일 수도 있지만, 남겨진 기억과 감정은 계속 살아간다는 사실. 이 영화는 그 조용한 진실을 공간을 통해 전하고 있습니다.